왜 프레임인가
김경일 교수님과 김태훈 교수님이 번역하신 <프레임의 힘>을 읽었습니다. 김경일 교수님은 드로우앤드류 채널에 출연하셔서 김미경 작가님이 <프레임의 힘>을 두고 “어렵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쉽지는 않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해요.
책을 다 읽고나니 딱 그 말씀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책은 술술 읽히는데, 요점을 말하려고 하면 한참 고민을 하게 돼요. 뭔 말이었더라 그러면서 읽고 또 읽다가 3번을 읽었어요. 그러고도 뭐라고 정리해야 할까 또 궁리하고 있었는데요, 책을 뒤적이다가, 와, 세상에!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사이다 한 잔을 찾았어요! 왜 마지막 문장을 대충 본 걸까요.ㅠㅠ 제가 찾아 헤매던 키워드가 바로 이 문장에 있었어요!
“우리는 협력을 통해 발전하지만 프레이머가 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프레임이 무엇인지는 어렴풋이 알겠는데, 왜 프레임이 있어야 하는건지 알 수가 없었거든요. 발전보다는 생존! 그래서 협력보다는 프레임! 이거였던 거죠.
<프레임의 힘> 책 소개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래요. 우리가 가진 많은 문제들이 그동안 협력을 통해 해결되어 왔는데, 협력은 이익을 낳고 안락함을 주는 이점이 있죠. 모여서 힘을 합치는 행동들은 눈에 띄기도 쉽고요. 반면 저자가 주장하는 프레임을 통한 해결은 눈에 띄지도 않는 데다가 기존 사고와는 갈등과 마찰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에 외면받아 왔어요.
저자는 우리가 현재 직면한 문제들은 단순히 협력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고 봐요. 기후위기, 인종간 경제적 불평등, 팬데믹, 포퓰리즘, 알고리즘적 권위주의 같은 문제들이요. AI가 데이터나 알고리즘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이 지나치게 합리성을 추구한다며 충동을 따라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이들 또한 자신들의 프레임 안에서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지적하고 있어요.
결국 프레임이라는 거죠. 그럼 어떤 프레임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알아야겠죠.
저자는 합리적이고 성숙한 프레임을 통해서 문제들을 해결하고 생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더딘 발전이거나 후퇴가 아니라 생존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협력 대신 프레임이 필요한 거죠.
그럼 프레임은 뭘까요. 1장으로 돌아가서, 마지막 문장을 읽어보겠습니다.
“프레임 형성은 출구를 제공한다. 인간은 인지 능력을 사용하여 심성모형을 세우고 결과를 잘 그려내고 대안을 제대로 선택하는 방식으로 적응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측면에서 분리된 인지적 자유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 인간은 생존과 번영에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책임감, 용기, 상상을 바탕으로 프레이머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여야 한다.”
프레임은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인과적 사고와 조건부적 사고, 제약조건으로 이뤄진 심성모형을 바탕으로 만든 프레임은 선택할 대안을 제공합니다. 심성모형의 특성상 눈에 보이지 않는 해결 과정은 사람들 사이에 갈등과 충돌을 일으키기 쉽고, 경직된 프레임으로 오용하는 테러리스트도 더러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프레임을 형성하거나 재형성하는 전략으로 교육, 다양성, 이동, 마찰 수용, 이렇게 네 가지 차원에서 설명하는데요, 그중 마찰 수용이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다양성을 압박하여 왜곡된 제도와 불평등, 증오가 가득한 공동체에서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프레임을 만들 수는 없을 테니까요. 개인들이 건강한 대안 현실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저자는 이 능력을 심적 민첩성이라는 이름으로 설명하는데요, “생각의 경로가 본질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적응 가능한 것이라는 아이디어다.”라고 말합니다.
심적 민첩성을 갖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훈련으로 새로운 관점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 나가는 동시에 동의와 비동의에 대한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제도적으로는 숙의민주주의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고령층의 심적 민첩성을 강화하는 경제적 인센티브 같은 프로그램을 갖출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책의 내용 소개였습니다.
프레임학개론
저는 이 책을 프레임학개론이라고 부르고 싶네요. 가장 큰 이유는 서문도 없이 다짜고짜 1장으로 넘어가는 패기와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주석 때문이고요, 두 번째는 목차 때문이에요. 프레임의 정의, 형성과 재형성 과정, 프레임을 둘러싼 이견, 프레임이 낳는 결과 등 프레임에 대한 모든 것을 공부할 수 있는데 마치 개론서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덕분에 학부 때 들었던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법학 같은 사회과학의 수많은 개론 수업이 떠오르더라고요. 개론서에는 법칙이나 개념의 존재가 너무 당연하게 서술되어 있는 반면, 왜 이런 게 중요할까, 어떻게 나와 연결되어 있을까를 설명해주진 않잖아요.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의 몫이죠.
이 책도 제겐 그랬어요. 그동안 읽었던 프레임에 관한 책들이 개인에게 프레임을 어떻게 적용할지 알려주거나 프레임의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내용들이었다면, 이 책은 프레임을 충실하게 소개하고,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어요. 김미경 작가님이 김경일 교수님께 하셨다는 말씀처럼 뭔가 친절한데, 불친절한 그런 책이에요.ㅋㅋ
프레임에 대해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은 분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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