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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비주얼페이지

동심과 진심의 만남_ < 청구회 추억 > 서평

by 비주얼페이지 2022.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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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시작과 즐거운 만남들, 갑작스러운 이별, 재회, 그리고 일상.
이 책은 신영복 선생님이 앞서 말한 것들을 떠올리며 쓴 글이다. 그가 추억한 대상은 연인이 아니라 청구회 아이들이었다.
<청구회 추억>은 66년 봄 서오릉에서 우연히 만난 아이들과 2년 여 동안 문화동 일대에서 함께 어울린 시간을 떠올리며 쓴 글이다.

저자는 봄 나들이길에서 앞서 6명의 아이들이 소풍을 가는 걸 눈여겨보게 됐고, 꾀를 부린 몇 가지 질문으로 시작해 아이들과 친해졌다. 헤어질 때 서로 주소를 주고 받았고, 아이들은 저자에게 진달래꽃 묶음을 선물했다.

이후 저자는 아이들을 잊어버렸지만 아이들은 보름 뒤 편지를 보냈다. 저자에게 서오릉에서 찍었던 사진과 지어주기로 했던 클럽 이름에 대해 묻는다. 저자는 죄책감을 느끼고, 지체 없이 답장을 쓴다. "이번 토요일 오후 다섯 시, 장충체육관 앞에서 만나자."(p.43) 이 일을 계기로 아이들과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6시에 만났다. 저자와 함께 아이들은 자기 일상을 얘기하고, 뛰어 놀았다. 미래를 위해 함께 돈을 조금씩 모았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시키지도 않았지만 동네를 가꾸고 달리기로 몸을 단련했다.
68년 저자가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수감되고 난 후 연락이 끊겼다. 감옥에서 저자는 아이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걱정하며 가슴 아파한다. 책이 출간되고 아이 중 한 명과 만나게 됐지만 그마저도 연락이 끊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같은 추억이라 하더라도 당사자들의 마음에 남아 있는 크기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힘겨운 삶을 이어왔을 그들에게 청구회에 대한 추억이 나의 것과 같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P.113) 저자 역시 '힘겨운 삶'을 살아왔음에도 넉넉한 마음으로 이해한다.

저자가 사형을 선고 받은 후 자신의 생을 추억하고 반성하며 써내려 간 글 중 한 편인 <청구회 추억>. 저자는 왜 청구회 아이들을 깊이 생각했을까? 글에서 밝힌 것처럼 심문과 재판에서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름이었기에 잊을래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때 그 무서운 시절을 고려해본다면, 저자와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독수리 부대'에 지나지 않았을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과 행여나 아이들의 동심이 짓밟히진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 머리에서 떠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밝고 따뜻하고 건강한 아이들이 무척 그리웠을 것이다. 저자는 "글을 적고 있는 동안만은 옥방의 침통한 어둠으로부터 진달래꽃처럼 화사한 서오릉으로 걸어 나오게 되는 구원의 시간이었다"(p.112)고 말한다.

<청구회 추억>은 감옥에서 한정된 지면에 쓴, 짧지만 진심이 가득 담긴 글이다. 그가 휴지에 남긴 추억은 아름답다. 봉투에 달랑 "시내 숙명여자대학교 교수실 신영복 선생"만 쓰고 편지를 부친 아이들의 동심과 먼 길 마다하지 않고 귀한 계란을 싸 들고 병문안을 가는 아이들의 정성은 빛난다. 이들이 세대와 계층을 뛰어넘는 교류에서 서로에게 보인 정성과 진심은 감동스럽다.

아름다운 삽화가 더해져 한 편의 동화 같기도 한 이 책을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세대간 갈등과 계층간 갈등에 지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신영복 선생이 아이들과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애쓴 마음의 흔적에서 갈등의 물꼬를 틔워줄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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